'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 -『論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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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첫 직장이 광화문 한복판에 있었다는 걸 나는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무서운 도로와 찌들은 골목들만이 끔찍한 핏줄처럼 뻗어 있을 뿐이라고 여겼던 서울을 다시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수백년의 세월을 안은 채 꿋꿋히 자리를 지켜온 고궁과 도심의 소음을 깜쪽같이 차단해 버리는 그곳의 나무들, 오래된 밥집과 술집들, 오래된 동네와 그 사이 숨어있는 작은 공원들.. 그런 오래되고 한적한 것/곳들을 품고있는 광화문을 '재'발견하면서 나는 서울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키울 수 있었다. 광화문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그런 오래된 것들 주위로 커다란 서점과 말끔한 까페,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좋은 영화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광화문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두고 있는 것도 조금만 움직이면 그런 좋은 것들을 맘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31일 광화문 씨네큐브가 문을 닫았다. 덕분에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시설도 환경도 좋아 꼭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잠깐씩 들르곤 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상영한 영화-This is England-는 2년 전부터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영화였더랬다. 씨네큐브 같은 곳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영화였다. 영화관을 운영하던 백두대간이 아예 문을 닫는 건 아니니 절망스러운 일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광화문을 찾을 이유가 또 하나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다.


광장이란 모름지기 그런 공간이 아닌데, 시청 앞에 광장이란게 생기면서부터 광화문이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얼마전 생긴 '광화문광장'이라는 걸 보고는 어렵게 들었던 정마저 떨어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피맛골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래된 술집과 밥집들도 이제 모두 허물어져 버렸다. 재개발이라는 괴물에 쫒겨 엄청나게 큰 주상복합건물 속으로 구겨져 들어갔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정취와 역사(!)를 지닌 작은 가게들이 이제는 그저 돈 받고 밥 팔고 술파는 곳으로 전락해 느낌이다. 아무리 간판에 since 어쩌고 저쩌고를 적어놓아도 몇십층 건물 속에 자리잡은 가게들에서 그런 세월을 느끼기는 힘들다. 가짜 광장과 재개발은 그렇게 광화문에 대한 나의 기억과 감각들까지 지워버리고 있다. 언제쯤 이 잔인한 폭주가 멈출까?
by 허용 | 2009/09/02 00:21 | 트랙백 | 덧글(9)
느리고 방만한 공부-1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사진 출처 : 구글 라이프 포토 아카이브>


8월이 끝나간다. 영수증을 보니 8월 1일에 샀다. 역시나 토요일,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잽싸게 교보로 나가 산 [윌리엄 모리스 평전].. 전철이나 거리에서, 혹은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만) 책을 펼쳤고 8월이 끝나가는 지금 반 가량을 읽었다. 그리고 단편적이거나 뜬금없더라도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들을 여백에 적어가며 읽고 있다. 말 그대로 느리고 방만하게 윌리엄 모리스를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 중에서 그의 사상을 압축해 주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아무래도 '생활사회주의'라 할 수 있겠다. 21세기의 상황에서 그의 생각이나 활동을 보면 너무 이상적이어서 순진해 보이거나 공상적으로 보이는 면도 많다. 하지만 책은 쓴 박홍규 교수의 말대로 모리스의 이상과 그의 사회주의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인간이 처한 상황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추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상적인 노동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해 나감으로써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그의 삶은, 자신의 일상과는 무관한 거대담론의 장에서만 진보와 혁명을 이야기하고 민주주의의 실천이란 오로지 선거판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그렇게 살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적잖은 각성과 교훈을 줄 수 있다.


모리스는 예술에서도 그런 '분열'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일반인들이 예술가를 온갖 이미지에 사로잡힌 채 일상생활과는 무관하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거니와(p. 106), 일부 예술가들은 '일상생활로부터 유리되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몽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게다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하는 체하고 감동하는 시늉을 내고 있을 따름(p. 114)"이라는 것이다. 소수를 위한 교육과 소수를 위한 자유와 마찬가지로, 그는 예술이 오로지 소수 속에서 불쌍하게 목숨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잠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낫다'고 말한다. 예술이 그런 치명적인 분열과 소수의 손에서 벗어나 만인을 위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견뎌내야만 하는 육체와 정신의 피로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의 저주받은 노동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소위 '소외된 노동'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논리와 모리스가 이야기하는 민중예술, 생활예술 개념은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이념이기도 했다. 해서 그다지 새로울 바 없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파편화된 노동과 개인적 소비의 형태로만 남은 예술과 문화의 상황에서, 새삼 모리스에게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가 추구했던 '공동예술'이 아닐까 싶다. 그가 말하는 공동예술은 단지 기술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분업이 아니다. 그가 남긴 작품-이라기 보다는 생산품이라고 해야 그의 취지에 더 어울릴 것이다-중 윌리엄 모리스의 단독작품은 많지 않다. 대다수가 그가 세운 모리스 회사의 동료들과 공동으로 만든 것들이다. 집단을 통한 공동생산, 협동, 동지애, 연대의식 등을 기초로 한 예술공동체의 형성은 모리스의 예술적 삶에 있어서 평생의 키워드였다고 한다(p. 117).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지점은 그가 그런 공동예술의 이상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중세예술, 특히 고딕예술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미술공예운동'이나 앞서 언급한 생활예술 역시 중세 고딕예술에서 그 전형적인 모델을 찾는다. 중세예술에 대한 모리스의 애정은 러스킨의 중세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중세주의는 한편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특히 모리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아내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던 화가 로제티와 모리스의 평생 친구였던 번 존스는 러스킨이 극구 옹호했던 '라파엘 전파'로 활동했는데, 이택광 교수는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라는 책에서 (정확하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 라파엘 전파를 '불가능한 명령'을 추구했던, 급진적이기는 했으되 시대착오적이었던 이들로 평가한다.


한국의 중세가 유럽의 중세와 쉽게 등치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모리스와 그의 친구들이 지녔던 중세에 대한 애정에 적잖은 공감을 느낀다.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노동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였고, 장인들에게 개성을 표현할 자유가 (얼마간) 허용되었으며, 사소한 생필품까지 돈으로 사야하는 상황까지 치닫진 않았던 시대였다. 일상적인 노동이 '일상의 예술 창조로서 즐거움의 표현'이었던(p. 81), 최소한 그런 여지가 남아 있었던 시대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많으리라 생각한다. 러스킨의 중세주의가 단순한 회고 취향이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심화된 19세기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원리였던(p. 56) 것처럼, 한국의 중세를 들추는 것은 현재의 추함을 까발리기 위함이다. 경계해야 할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렇게 과거를 뒤적거리는 '나'의 현실도피적 욕망이며, 또 하나는 그렇게 들춰진 과거가 악용되는 상황이다. 모리스가 노동당의 선구자로 찬양됨과 동시에 가장 토리적인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책을 읽다가 퍼득 황룡사 치미가 떠올랐었다. 요즘 들어 더욱 유명(?)해진 선덕여왕 때까지, 1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국가적 건축사업(황룡사 건립)의 결과물에서 진흙을 주무르던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m에 가까운 동양 최대의 치미

그 치미 뒷편에 손가락으로 주물럭 거려 새긴 필부필부의 얼굴
<사진 출처 : http://dwban22.egloos.com>
by 허용 | 2009/09/01 02:25 | 트랙백 | 덧글(0)
까치내 밤하늘과..



나흘 동안 작천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니, 여름이 지나가 버린 듯 하다. 요사이 혼자 즐기는 유일한 낙인 자전거 타기.. 주말이 오면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들은 느리게, 시끄러운 도로는 잽싸게 달려 광화문 서점엘 간다. 오늘은 '그래도 너무 이르다..' 싶어 국화 화분을 내다놓은 꽃집은 그냥 지나치고 서점에서 시집만 한 권 골랐다. 가을 맞이는 이 정도로..  
by 허용 | 2009/08/30 02:20 | 트랙백 | 덧글(0)
2009년의 메모들
추기경과 유머.. 추기경을 추모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유머였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유머는 그런 '자기객관화'가 가능해야 발산될 수 있는 자질이다. 그런 이유에서 유머가 불가능한 관계는 연애관계이며, 유머가 불가능한 집단은 정치집단이다. 사실, 이 나라의 정치집단은 그 자체가 유머다. [2009. 4.13]


또래.. 그저 나이가 비슷한 사람말고.. 비슷한 취향과 생각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 동시에 자극과 긴장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 혹은 그런 계기들.. 그게 있어야 외롭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득 주변에 그런 또래가 없다는 걸 느낀다. 그립다. 그런 또래가.. [2009. 4. 18]


"우리가 언제 참된 의미에서 타인과 만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슬픔 속에서 있을 때이다. 만남은 슬픔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중략)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에 슬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남루한 일인가." [2009. 4. 18] (김상봉 교수의 책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中) 


"스터디 진행 속도를 조절할 것입니다. 약간 속도를 높이려고 했던 현재 스터디 진행방식을 다음 주 이후부터는 조금 늦출 예정입니다. 지금 텍스트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가운데 속도를 내서 6월 중에 끝내려고 했는데, 과욕이었나 봅니다. 역시 공부에서 과욕은 금물입니다. 참가자가 적더라도, 속도가 더디더라도 조금씩 차근차근 밟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7년 여 스터디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길이 정도(正道)인 것 같습니다." [2009. 4. 20] (스터디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일 내용 中)


"다음 주 스터디 날인 5월 1일은 노동절!!! 직장을 쉬는 분도 있을테고 무관하게 하루를 보내시는 분도 있을테지만, 지식노동자로서 가뜩이나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스터디를 쉽니다. 그냥 빈말이 아닙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그것으로 벌어먹고 살게 될 이후의 삶, 일터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나와 이웃들의 노동에 대해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해 봅시다. 수백년의 시간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것들과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여기'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관심은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어쩌면 '공부'를 한다는 사람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성찰이라고도 생각합니다." [2009. 4. 26] (스터디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일 내용 中)


5년 동안 한 나라의 정책과 수많은 이들의 생계를 좌우했던 전직 대통령마저 그렇게 생의 끝자락까지 몰아가는 사회다. 그렇게 막다른 절벽에 몰려서도 손을 뻗어 의지할 수 있는 방편이란 게 스스로를 버리는 길밖에 없는 나라다. 전직 대통령이었다. 하물며, 옥상 난간 끝에서 불길에 밀려 죽은 이들, 동료의 복직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을 멘 택배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었겠는가? 모두가 저마다의 부엉이 바위 끝, 절벽에 몰려 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하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싸워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2009. 5. 28]


가끔, 세상이 참 허술하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나만큼이나 허술한 사람들.. 심지어는 나보다 더 허술한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좌우하게 되는 꼴도 종종 접한다. 그럴 때면 신의 불공평함을 탓하고 싶기까지 하다. 하긴, 신인들 어찌.. [2009. 6. 1]


친구曰 "봉준호 마더를 보다가 문득 네 안부가 궁금해졌다. 잘 살고 있습니까?" 나曰 "그래, 우리 빈이가 나를 좀 닮았지.. 이 몸은 포천에서 촌놈 되지 않으려 분투 중.." 친구曰 "그러게, 왜 원빈이 널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잘 산다니 오케이. 나도 일상과 고군분투중" [2009. 6. 8] (친구와 나눈 문자 메시지)


올레길을 걸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여행(?) 방식이다. 엄마의 걷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동네 산책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은 오래전부터 올레길들을 걸어왔다. 까치내 올레길, 효자동 올레길, 보문동 올레길, 안암동 올레길, 성북동 올레길... 그런 길들을 두고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유난을 떨 필욘 없지 않나 싶다. 나는 오히려 제주도의 이국적인 풍경이 더 좋다. 그런 거 보려고 바다까지 건너는 거 아니겠는가.. [2009. 6. 11]


레슬러.. 그는 결국 자신을 인정해 주는 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멋지게 날아오른다. 그 링 위에서 그는 가늘게 남아있던 가족의 끈마저 놓쳐 버린 초라하기 그지없는 늙은 레슬러가 아니라, 승리만을 일궈가는 환상의 레슬러, 가짜 영웅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진짜 링일까? 트레일러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퇴락한 레슬러의 생활이 진짜 링인가? 아니면 여전히 자신을 전사로 알아주는, 그 환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있는 경기장이 진짜 링인가? 감독은 어쩌면 그 가짜 링이 랜디에겐 귀의할 수밖에 없는, 당장 심장이 멈춰버릴 수도 있는 곳이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이 있는 진짜 링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느 링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혹시 둘이 분열되어 있진 않은가? 호구지책과 자아실현.. 이런 이분법뿐만 아니라, 깨어진 이상만 남아있는 곳과 화려한 환상이 살아있는 곳, 비록 환상일지라도 나를 인정해 주는 곳과 죽도록 노력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곳, 우리는 어느 곳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가? 영화를 통해 내가 받은 질문은 이런 거다. 분명한 건 어느 곳이건 다 힘들다는 점.. 죽을 수도 있는 경기장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현실, 두 곳 모두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럴 때 과연 우리는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 나를 환호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를 인정해 주는 곳, 그곳은 내가 이룬 작은 가정일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친구들과의 자리일 수도 있고, 혹은 가짜 욕망을 좇는 모습이 인정받는 어떤 곳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런 링을 찾아 헤맨다. 혹은 가짜로 그런 링을 만들기도 한다. 멋지게 날아오르는 모습만 남기고 어디로 어떻게 내려 섰는지, 혹은 주저 앉았는지 보여주지 않은 감독은 그렇게 부유하는 우리의 초상을 보여줄 뿐이었다. [2009. 6. 15]


생활인과 자유인 사이.. 며칠 전 술자리를 가진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며 늦은 밤 전화를 했다. 어디냐고, 포천이랬더니, 오란다. 마포에 있다고..ㅎㅎ 전화기를 돌려가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다, 한 녀석이 나보고 자유인이라고, 너는 너무 자유인이라고 한다. 사실 그네들과는 너무도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직장도, 결혼도.. 그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 한둘을 건사하고 있고, 10년 가까운 결혼생활과 그 만큼의 세월동안 쭉 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전화를 끊고 짧은 상념 끝에 나도 평범한 생활인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그렇다. 생활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활인과 자유인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 오락가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애초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고, 답을 알고도 그것 아닌 답을 좇거나, 그것 아닌 답으로 밀려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돌아서야 한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거다. 최소한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엔 그런 자기 성찰과 반성이 빛을 발해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그런 긴장감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떠밀려 가지 않을 수 있다. 늙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밀려가서는 안된다고 다짐해야 한다. 최소한, 최소한 말이다. [2009. 6. 19]


전시쟁이.. 얼마 전 방학을 맞아 잠시 고국을 찿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내가 나 스스로를 '전시쟁이'라고 불렀다. 과연 그렇다. 나는 전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세상에 소리치고 싶다. 그런 능력을 키워왔던 여정이 아니였을까 싶다. [2009. 6. 19]


눈으로 보는 음악.. 엄마가 바야흐로 서예라는 예술에 젖어들어가고 계신다. 보기에 참 좋다. 흐뭇하다. 나는 언제쯤 붓을 잡을까 싶다. 먹부터 갈아야겠지.. 아무튼 서예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아니 단순해서 심오한 예술이다. 그 깊이에 빠질 날이 언젠간 있을 것이다. [2009. 6. 24]


뭔가가 가로막고 있어서 내 감정과 느낌이 발산되지 않는 게 아니다. 깊지 못해서 그런거다. 나라는 녀석은 그런 깊이를 쌓아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2009. 6. 24]


얄팍함.. 얄팍한 기술로 돈들을 번다. 청담동의 회사를 다닐 때 절실하게 느꼈던 바다. 얄팍한 기술은 쉽게 닳아질 뿐 축적되어 쌓이지 못한다. 짧은 호흡으로 쉴 새 없이 반복되는 기업의 이윤창출 방식은 더구나 개인의 성과나 능력이 쌓일 수 있는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소수의 주머니에 돈은 두둑하게 쌓이겠지만 노동유연화라는 야만스러운 구호 아래 다수의 개인들은 부품처럼 소모될 뿐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비정규직이 난무하는, 얄팍함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런 두꺼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두꺼운 사람이고 싶다. 청담동의 회사를 그만두었던 것도 그 얄팍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2009. 6. 24]


몸-자전거 2.. 자전거를 또 도둑맞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치면 네 대째다. 아~ 나쁜..), 6개월을 견디다 결국 새 놈을 구했다. 지금까지 자전거 중에서 가장 싸고 (앞으로는 절대 비싼 자전거 혹은 비싸 보이는 자전거는 사지 않을테닷! 사실 이전 자전거들도 그리 비싼 축에 들지는 않았지만 비싸 보이는 게 문제였다), 구조나 기능도 아주 단순하다. 픽시(fixie)라고들 부르는 자전거.. 이 녀석은 기어가 하나 뿐인데다 고정되어 있어 자전거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몸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천천히 갈 때는 물론이고, 내리막길을 갈 때도 계속 페발을 굴려야 하고, 속도를 줄일 때도 페달을 뒤로 밟아 조절해야 한다. 페달이 멈추면 자전거도 멈춘다. 나라는 녀석의 기질이나 기호와도 어울리는 듯 하다.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오히려 다운되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딱히 항상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번거롭고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내 몸은 오히려 기운을 잃는다. 그러다 침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다 자신감마저 잃는다. 뭐든 부산하게 움직여야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간다. 단순하되 끊임없이.. 픽시와 더불어 내 생활도 그렇게 움직여야 할테다. [2009. 6. 29]


일상과의 분투.. 돈을 벌려고 분투한다는 게 아니라, 안주하려는 일상과의 반목을 의미한다. 그렇게 저항하지 않고 일상에 떠밀려서는 안된다. 해서, 나는 일상과 분투하고 있는 생활인이다. [2009. 6. 29]


뭘 잘못 먹었는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었다. 며칠 느슨했었는데.. 정신 차리라는 몸의 신호일지도.. [2009. 7. 8]


술 담배 끊고, 규칙적인 생활에, 적당한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 긍정적인 생각.. 말은 쉽지만 실제는 어렵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그런 쉬운 일이 어려워지는 물리적인 상황과 조건이다. [2009. 7. 9]


아무리 제 멋에 산다지만 도통 꼴 사나운 '제 멋'들을 보아 넘기는 것도 죽을 맛이다. [2009. 7. 9]


이제 이 나이에 술 잘 먹는게 자랑도 아니고.. [2009. 7. 10] 


텍스트와 컨텍스트.. 텍스트 없이, 혹은 뭇 텍스트들을 아우르는 컨텍스트만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무수한 텍스트들이 살아 움직이며 때로는 반복되고 때로는 변주되는 모양새다. 그걸 관찰하고 기록하려는 사람은 결국 무수히 변주되는 텍스트들의 흔적을 뒤쫓아가는 형국을 넘지 못할 것이다. [2009. 7. 11]


강화도의 횟집 하수구 주변을 떠도는 갈매기들을 보다 문득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떠올렸다. '자! 플레처, 수평비행부터 시작해 보세' 이게 마지막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2009. 7. 13]


이런 날엔 정말 (면허도 없지만) 혼자 모는 차로 다니고 싶다.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 저 좀 봐달라는 듯 차려입고 멋있다고 건들대는 사람, 흉한 줄도 모르고 무작정 살만 드러낸 사람, 생활에 찌들어 젖은 종이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  냄새 나는 사람.. 그 틈에 끼어 부대끼기가 끔찍하게 싫은 오늘 같은 날.. [2009. 7. 19]


문화가 작동하는 지점.. 현실이 싫어질 때 소위 문화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부정하거나 회피하고픈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문화에 일말의 긍정성조차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문화, 그래서 삶과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그게 진짜 문화다. [2009. 7. 20]

by 허용 | 2009/07/21 09:38 | 트랙백 | 덧글(8)
2008년의 메모들
장례식은 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숨 돌릴 겨를을 주지 않는다. 슬퍼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천천히 오랫동안 깊게 슬퍼하라는 배려 아닌 배려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오래 가는 것이다. 죽은 이는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슬퍼할 여유없는 장례식은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2008. 3. 13] (사촌동생의 장례식장에서)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삶이 과연 무언지, 슬픔없는 삶은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건지.. 아빠의 소박한 바람.. 어쩌면 쉬울 수도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많은 행운과 노력과 복이 있어야 하는지 이제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모두 죽는다. 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하게, 정말 노을이 지듯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소망인지 이제는 조금 가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죽음을 준비할 여유조차 없는 생이 강요되는 현실이 분노스럽고 안따깝다. 이제, 나 스스로를 놓아야 한다. 스스로의 욕망과 욕심과 심지어 꿈마저도.. 어쩌면, 그런 모든 바람을 놓아버려야 황혼의 노을처럼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애쓰지 말자. 애써 얻으려 하지도, 애써 인정받으려 하지도 말자. 뭔가를 이루겠노라 안달하지도 말 것이며, 뭔가를 얻지 못했다고 애닳아 하지도 말자.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정말 그 동안만은 엄마에게 더이상 우환과 애환이 없도록, 편안히 자식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웃으며, 뛸 듯 기쁘지 않더라도, 조용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지난 생을 추억하고 그리워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편안하게 당신의 인생을 바라보며 사실 수 있도록 하자. [2008. 3. 13]


삶이 수학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정석이란 건 없다. 모두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 맞는 특별한 경우의 수만이 있을 뿐이다. 정답이나 정석이 있다고 기대하고 그걸 찾아 익힌 후 적용하려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유일한 정답으로, 그렇게 닫혀 버리면 일상은 얼마나 숨막히겠는가! 모든 삶은 일상이라는 무수히 다른 경우의 수들로 이루어진 단순합집합일 뿐이다. [2008 3. 29]


모두가 나 같진 않다. 그러니 섣부른 기대는 애초부터 마라. [2008. 5. 7]


악역과 악인.. 조직 안에서 혹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악역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악역(惡役)을 맡았다고 해서 그가 악인(惡人)인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내화한 조직 혹은 일의 목표가 어떤 이의 목표와 상충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선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사람에게도 악역을 행해야 할 때가 있다. 선택할 수밖에 없고, 난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어떤 이가 악역을 맡은 나를 악인으로 대하는 상황에 이르니.. 황당하고 실망스럽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의 사람보는 눈이 실망스럽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악역을 맡기도 하다니 참 많이 변했구나..싶다. [2008 10. 14]


이제 겸손해지고 있다는 느낌..? 그러니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자각.. 그게 패배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안주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일까? [2008. 11. 16]


박물관에서 평소에는 유물 연구하고 전시 때는 기획하고.. 그렇게 살면 좋겠다만, 다만 불안정한 지위와 박봉이 걸릴 뿐이다. 박봉이야 어떻게 되겠지만, 불안정한 지위가 나의 능력을 제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2008. 11. 20]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보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이란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닐 경우가 많다. [2008.12.15] (고모의 장지(葬地)에서)
by 허용 | 2009/07/21 09:3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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