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 -『論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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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방만한 공부-1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사진 출처 : 구글 라이프 포토 아카이브>


8월이 끝나간다. 영수증을 보니 8월 1일에 샀다. 역시나 토요일,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잽싸게 교보로 나가 산 [윌리엄 모리스 평전].. 전철이나 거리에서, 혹은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만) 책을 펼쳤고 8월이 끝나가는 지금 반 가량을 읽었다. 그리고 단편적이거나 뜬금없더라도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들을 여백에 적어가며 읽고 있다. 말 그대로 느리고 방만하게 윌리엄 모리스를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 중에서 그의 사상을 압축해 주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아무래도 '생활사회주의'라 할 수 있겠다. 21세기의 상황에서 그의 생각이나 활동을 보면 너무 이상적이어서 순진해 보이거나 공상적으로 보이는 면도 많다. 하지만 책은 쓴 박홍규 교수의 말대로 모리스의 이상과 그의 사회주의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인간이 처한 상황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추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상적인 노동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해 나감으로써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그의 삶은, 자신의 일상과는 무관한 거대담론의 장에서만 진보와 혁명을 이야기하고 민주주의의 실천이란 오로지 선거판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그렇게 살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적잖은 각성과 교훈을 줄 수 있다.


모리스는 예술에서도 그런 '분열'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일반인들이 예술가를 온갖 이미지에 사로잡힌 채 일상생활과는 무관하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거니와(p. 106), 일부 예술가들은 '일상생활로부터 유리되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몽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게다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하는 체하고 감동하는 시늉을 내고 있을 따름(p. 114)"이라는 것이다. 소수를 위한 교육과 소수를 위한 자유와 마찬가지로, 그는 예술이 오로지 소수 속에서 불쌍하게 목숨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잠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낫다'고 말한다. 예술이 그런 치명적인 분열과 소수의 손에서 벗어나 만인을 위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견뎌내야만 하는 육체와 정신의 피로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의 저주받은 노동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소위 '소외된 노동'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논리와 모리스가 이야기하는 민중예술, 생활예술 개념은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이념이기도 했다. 해서 그다지 새로울 바 없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파편화된 노동과 개인적 소비의 형태로만 남은 예술과 문화의 상황에서, 새삼 모리스에게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가 추구했던 '공동예술'이 아닐까 싶다. 그가 말하는 공동예술은 단지 기술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분업이 아니다. 그가 남긴 작품-이라기 보다는 생산품이라고 해야 그의 취지에 더 어울릴 것이다-중 윌리엄 모리스의 단독작품은 많지 않다. 대다수가 그가 세운 모리스 회사의 동료들과 공동으로 만든 것들이다. 집단을 통한 공동생산, 협동, 동지애, 연대의식 등을 기초로 한 예술공동체의 형성은 모리스의 예술적 삶에 있어서 평생의 키워드였다고 한다(p. 117).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지점은 그가 그런 공동예술의 이상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중세예술, 특히 고딕예술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미술공예운동'이나 앞서 언급한 생활예술 역시 중세 고딕예술에서 그 전형적인 모델을 찾는다. 중세예술에 대한 모리스의 애정은 러스킨의 중세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중세주의는 한편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특히 모리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아내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던 화가 로제티와 모리스의 평생 친구였던 번 존스는 러스킨이 극구 옹호했던 '라파엘 전파'로 활동했는데, 이택광 교수는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라는 책에서 (정확하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 라파엘 전파를 '불가능한 명령'을 추구했던, 급진적이기는 했으되 시대착오적이었던 이들로 평가한다.


한국의 중세가 유럽의 중세와 쉽게 등치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모리스와 그의 친구들이 지녔던 중세에 대한 애정에 적잖은 공감을 느낀다.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노동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였고, 장인들에게 개성을 표현할 자유가 (얼마간) 허용되었으며, 사소한 생필품까지 돈으로 사야하는 상황까지 치닫진 않았던 시대였다. 일상적인 노동이 '일상의 예술 창조로서 즐거움의 표현'이었던(p. 81), 최소한 그런 여지가 남아 있었던 시대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많으리라 생각한다. 러스킨의 중세주의가 단순한 회고 취향이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심화된 19세기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원리였던(p. 56) 것처럼, 한국의 중세를 들추는 것은 현재의 추함을 까발리기 위함이다. 경계해야 할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렇게 과거를 뒤적거리는 '나'의 현실도피적 욕망이며, 또 하나는 그렇게 들춰진 과거가 악용되는 상황이다. 모리스가 노동당의 선구자로 찬양됨과 동시에 가장 토리적인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책을 읽다가 퍼득 황룡사 치미가 떠올랐었다. 요즘 들어 더욱 유명(?)해진 선덕여왕 때까지, 1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국가적 건축사업(황룡사 건립)의 결과물에서 진흙을 주무르던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m에 가까운 동양 최대의 치미

그 치미 뒷편에 손가락으로 주물럭 거려 새긴 필부필부의 얼굴
<사진 출처 : http://dwban22.egloos.com>
by 허용 | 2009/09/01 02:2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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