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과 유머.. 추기경을 추모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유머였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유머는 그런 '자기객관화'가 가능해야 발산될 수 있는 자질이다. 그런 이유에서 유머가 불가능한 관계는 연애관계이며, 유머가 불가능한 집단은 정치집단이다. 사실, 이 나라의 정치집단은 그 자체가 유머다. [2009. 4.13]
또래.. 그저 나이가 비슷한 사람말고.. 비슷한 취향과 생각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 동시에 자극과 긴장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 혹은 그런 계기들.. 그게 있어야 외롭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득 주변에 그런 또래가 없다는 걸 느낀다. 그립다. 그런 또래가.. [2009. 4. 18]
"우리가 언제 참된 의미에서 타인과 만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슬픔 속에서 있을 때이다. 만남은 슬픔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중략)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에 슬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남루한 일인가." [2009. 4. 18] (김상봉 교수의 책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中)
"스터디 진행 속도를 조절할 것입니다. 약간 속도를 높이려고 했던 현재 스터디 진행방식을 다음 주 이후부터는 조금 늦출 예정입니다. 지금 텍스트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가운데 속도를 내서 6월 중에 끝내려고 했는데, 과욕이었나 봅니다. 역시 공부에서 과욕은 금물입니다. 참가자가 적더라도, 속도가 더디더라도 조금씩 차근차근 밟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7년 여 스터디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길이 정도(正道)인 것 같습니다." [2009. 4. 20] (스터디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일 내용 中)
"다음 주 스터디 날인 5월 1일은 노동절!!! 직장을 쉬는 분도 있을테고 무관하게 하루를 보내시는 분도 있을테지만, 지식노동자로서 가뜩이나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스터디를 쉽니다. 그냥 빈말이 아닙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그것으로 벌어먹고 살게 될 이후의 삶, 일터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나와 이웃들의 노동에 대해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해 봅시다. 수백년의 시간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것들과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여기'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관심은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어쩌면 '공부'를 한다는 사람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성찰이라고도 생각합니다." [2009. 4. 26] (스터디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일 내용 中)
5년 동안 한 나라의 정책과 수많은 이들의 생계를 좌우했던 전직 대통령마저 그렇게 생의 끝자락까지 몰아가는 사회다. 그렇게 막다른 절벽에 몰려서도 손을 뻗어 의지할 수 있는 방편이란 게 스스로를 버리는 길밖에 없는 나라다. 전직 대통령이었다. 하물며, 옥상 난간 끝에서 불길에 밀려 죽은 이들, 동료의 복직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을 멘 택배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었겠는가? 모두가 저마다의 부엉이 바위 끝, 절벽에 몰려 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하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싸워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2009. 5. 28]
가끔, 세상이 참 허술하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나만큼이나 허술한 사람들.. 심지어는 나보다 더 허술한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좌우하게 되는 꼴도 종종 접한다. 그럴 때면 신의 불공평함을 탓하고 싶기까지 하다. 하긴, 신인들 어찌.. [2009. 6. 1]
친구曰 "봉준호 마더를 보다가 문득 네 안부가 궁금해졌다. 잘 살고 있습니까?" 나曰 "그래, 우리 빈이가 나를 좀 닮았지.. 이 몸은 포천에서 촌놈 되지 않으려 분투 중.." 친구曰 "그러게, 왜 원빈이 널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잘 산다니 오케이. 나도 일상과 고군분투중" [2009. 6. 8] (친구와 나눈 문자 메시지)
올레길을 걸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여행(?) 방식이다. 엄마의 걷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동네 산책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은 오래전부터 올레길들을 걸어왔다. 까치내 올레길, 효자동 올레길, 보문동 올레길, 안암동 올레길, 성북동 올레길... 그런 길들을 두고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유난을 떨 필욘 없지 않나 싶다. 나는 오히려 제주도의 이국적인 풍경이 더 좋다. 그런 거 보려고 바다까지 건너는 거 아니겠는가.. [2009. 6. 11]
레슬러.. 그는 결국 자신을 인정해 주는 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멋지게 날아오른다. 그 링 위에서 그는 가늘게 남아있던 가족의 끈마저 놓쳐 버린 초라하기 그지없는 늙은 레슬러가 아니라, 승리만을 일궈가는 환상의 레슬러, 가짜 영웅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진짜 링일까? 트레일러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퇴락한 레슬러의 생활이 진짜 링인가? 아니면 여전히 자신을 전사로 알아주는, 그 환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있는 경기장이 진짜 링인가? 감독은 어쩌면 그 가짜 링이 랜디에겐 귀의할 수밖에 없는, 당장 심장이 멈춰버릴 수도 있는 곳이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이 있는 진짜 링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느 링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혹시 둘이 분열되어 있진 않은가? 호구지책과 자아실현.. 이런 이분법뿐만 아니라, 깨어진 이상만 남아있는 곳과 화려한 환상이 살아있는 곳, 비록 환상일지라도 나를 인정해 주는 곳과 죽도록 노력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곳, 우리는 어느 곳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가? 영화를 통해 내가 받은 질문은 이런 거다. 분명한 건 어느 곳이건 다 힘들다는 점.. 죽을 수도 있는 경기장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현실, 두 곳 모두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럴 때 과연 우리는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 나를 환호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를 인정해 주는 곳, 그곳은 내가 이룬 작은 가정일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친구들과의 자리일 수도 있고, 혹은 가짜 욕망을 좇는 모습이 인정받는 어떤 곳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런 링을 찾아 헤맨다. 혹은 가짜로 그런 링을 만들기도 한다. 멋지게 날아오르는 모습만 남기고 어디로 어떻게 내려 섰는지, 혹은 주저 앉았는지 보여주지 않은 감독은 그렇게 부유하는 우리의 초상을 보여줄 뿐이었다. [2009. 6. 15]
생활인과 자유인 사이.. 며칠 전 술자리를 가진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며 늦은 밤 전화를 했다. 어디냐고, 포천이랬더니, 오란다. 마포에 있다고..ㅎㅎ 전화기를 돌려가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다, 한 녀석이 나보고 자유인이라고, 너는 너무 자유인이라고 한다. 사실 그네들과는 너무도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직장도, 결혼도.. 그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 한둘을 건사하고 있고, 10년 가까운 결혼생활과 그 만큼의 세월동안 쭉 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전화를 끊고 짧은 상념 끝에 나도 평범한 생활인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그렇다. 생활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활인과 자유인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 오락가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애초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고, 답을 알고도 그것 아닌 답을 좇거나, 그것 아닌 답으로 밀려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돌아서야 한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거다. 최소한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엔 그런 자기 성찰과 반성이 빛을 발해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그런 긴장감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떠밀려 가지 않을 수 있다. 늙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밀려가서는 안된다고 다짐해야 한다. 최소한, 최소한 말이다. [2009. 6. 19]
전시쟁이.. 얼마 전 방학을 맞아 잠시 고국을 찿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내가 나 스스로를 '전시쟁이'라고 불렀다. 과연 그렇다. 나는 전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세상에 소리치고 싶다. 그런 능력을 키워왔던 여정이 아니였을까 싶다. [2009. 6. 19]
눈으로 보는 음악.. 엄마가 바야흐로 서예라는 예술에 젖어들어가고 계신다. 보기에 참 좋다. 흐뭇하다. 나는 언제쯤 붓을 잡을까 싶다. 먹부터 갈아야겠지.. 아무튼 서예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아니 단순해서 심오한 예술이다. 그 깊이에 빠질 날이 언젠간 있을 것이다. [2009. 6. 24]
뭔가가 가로막고 있어서 내 감정과 느낌이 발산되지 않는 게 아니다. 깊지 못해서 그런거다. 나라는 녀석은 그런 깊이를 쌓아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2009. 6. 24]
얄팍함.. 얄팍한 기술로 돈들을 번다. 청담동의 회사를 다닐 때 절실하게 느꼈던 바다. 얄팍한 기술은 쉽게 닳아질 뿐 축적되어 쌓이지 못한다. 짧은 호흡으로 쉴 새 없이 반복되는 기업의 이윤창출 방식은 더구나 개인의 성과나 능력이 쌓일 수 있는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소수의 주머니에 돈은 두둑하게 쌓이겠지만 노동유연화라는 야만스러운 구호 아래 다수의 개인들은 부품처럼 소모될 뿐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비정규직이 난무하는, 얄팍함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런 두꺼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두꺼운 사람이고 싶다. 청담동의 회사를 그만두었던 것도 그 얄팍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2009. 6. 24]
몸-자전거 2.. 자전거를 또 도둑맞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치면 네 대째다. 아~ 나쁜..), 6개월을 견디다 결국 새 놈을 구했다. 지금까지 자전거 중에서 가장 싸고 (앞으로는 절대 비싼 자전거 혹은 비싸 보이는 자전거는 사지 않을테닷! 사실 이전 자전거들도 그리 비싼 축에 들지는 않았지만 비싸 보이는 게 문제였다), 구조나 기능도 아주 단순하다. 픽시(fixie)라고들 부르는 자전거.. 이 녀석은 기어가 하나 뿐인데다 고정되어 있어 자전거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몸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천천히 갈 때는 물론이고, 내리막길을 갈 때도 계속 페발을 굴려야 하고, 속도를 줄일 때도 페달을 뒤로 밟아 조절해야 한다. 페달이 멈추면 자전거도 멈춘다. 나라는 녀석의 기질이나 기호와도 어울리는 듯 하다.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오히려 다운되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딱히 항상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번거롭고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내 몸은 오히려 기운을 잃는다. 그러다 침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다 자신감마저 잃는다. 뭐든 부산하게 움직여야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간다. 단순하되 끊임없이.. 픽시와 더불어 내 생활도 그렇게 움직여야 할테다. [2009. 6. 29]
일상과의 분투.. 돈을 벌려고 분투한다는 게 아니라, 안주하려는 일상과의 반목을 의미한다. 그렇게 저항하지 않고 일상에 떠밀려서는 안된다. 해서, 나는 일상과 분투하고 있는 생활인이다. [2009. 6. 29]
뭘 잘못 먹었는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었다. 며칠 느슨했었는데.. 정신 차리라는 몸의 신호일지도.. [2009. 7. 8]
술 담배 끊고, 규칙적인 생활에, 적당한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 긍정적인 생각.. 말은 쉽지만 실제는 어렵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그런 쉬운 일이 어려워지는 물리적인 상황과 조건이다. [2009. 7. 9]
아무리 제 멋에 산다지만 도통 꼴 사나운 '제 멋'들을 보아 넘기는 것도 죽을 맛이다. [2009. 7. 9]
이제 이 나이에 술 잘 먹는게 자랑도 아니고.. [2009. 7. 10]
텍스트와 컨텍스트.. 텍스트 없이, 혹은 뭇 텍스트들을 아우르는 컨텍스트만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무수한 텍스트들이 살아 움직이며 때로는 반복되고 때로는 변주되는 모양새다. 그걸 관찰하고 기록하려는 사람은 결국 무수히 변주되는 텍스트들의 흔적을 뒤쫓아가는 형국을 넘지 못할 것이다. [2009. 7. 11]
강화도의 횟집 하수구 주변을 떠도는 갈매기들을 보다 문득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떠올렸다. '자! 플레처, 수평비행부터 시작해 보세' 이게 마지막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2009. 7. 13]
이런 날엔 정말 (면허도 없지만) 혼자 모는 차로 다니고 싶다.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 저 좀 봐달라는 듯 차려입고 멋있다고 건들대는 사람, 흉한 줄도 모르고 무작정 살만 드러낸 사람, 생활에 찌들어 젖은 종이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 냄새 나는 사람.. 그 틈에 끼어 부대끼기가 끔찍하게 싫은 오늘 같은 날.. [2009. 7. 19]
문화가 작동하는 지점.. 현실이 싫어질 때 소위 문화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부정하거나 회피하고픈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문화에 일말의 긍정성조차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문화, 그래서 삶과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그게 진짜 문화다. [2009.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