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 -『論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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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修辭와 상상력想像力
예전에 ‘교양과 수사’라는 제목으로 일단의 생각을 펼쳐본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면 블로그에도 올리려 했으나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아, 말았다. 당시 생각의 대강은, “대화에서 수사적 표현을 얼마나 사용하느냐는 그 사람의 교양-심지어는 학력-에 비례하는 건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수사’의 개념에 대해 내가 아직 명확한 상을 잡고 있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고, 사실 학력과 수사가 그렇게 단선적인 관계로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싶었다. 사실 많이 배웠다고 수사적 표현력이 모두 뛰어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 나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몹시도 건조하게 느껴졌고, 그런 건조하고 직설적인 대화에 적잖은 피곤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다, 친구가 올린 글을 보며 다시 한번 대화, 수사, 학력, 교양 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래 이어지는 내용을 위해서는 링크된 글을 꼭 읽어보시길. 그리고 꽤 길게 이어지니 심호흡도 한번..)


Apple과 MS의 광고는 모두 비슷한 주제와 수사적 표현을 동원하고 있지만 그 표현이 겨냥하는 대상(audience)은 사뭇 다르다는 게 친구의 생각이다. 그리고 친구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Apple의 광고보다는 MS의 광고가 더욱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MS의 광고가 좀더 일반적인 사람들(general audience)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만을 본다면 MS의 광고가 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배경 속에 여러 인종과 성별의 사람들이 등장하니 그 다양성은 Apple의 광고보다 충분히 일반성을 획득할 만하다. 친구가 의외라고 느꼈던 것과 달리 ‘시각적 경험에 익숙한’ 그들은 말 그대로 시각정보를 좀더 비중있게-혹은 편중되게- 수용했던 것 같다. 흑백 화면에 다른 어떤 시각 효과를 가미하지 않고 오로지 나래이션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Apple의 광고보다는 컬러 화면에 다양한 앵글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 등 MS의 광고가 시각적으로 훨씬 풍부하다. 그리고 나래이션에 맞춰 더해지는 CG 효과는 시각정보와 의미정보를 더욱 직접적-혹은 즉자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MS의 광고가 (물론 시대적인 차이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좀더 치밀하고 계산된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그런 MS 광고의 ‘일반성’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흑백 화면 속의 낯선 과거 풍경보다는 다채로운 현재적 상황 속에 묘사된 인물들에게 더 친숙함을 느꼈을 테고, 그런 친밀감은 스스로를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는 MS 광고의 ‘일반성’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MS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부분이 구체적인 정황(학교, 가정, 사무실, 상점, 도로, 사업현장 등)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그런 일반성의 강화에 큰 몫을 한다. 하지만 사실 상업광고에서 그런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황의 제시는 상품에 대한 구매욕을 더욱 자극하는 데도 무척 효과적이다. 광고 속 인물들의 손과 주변에는, 그들이 얼마나 다른 환경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항상 컴퓨터나 PDA, 게임기 등 구체적인 물건들이 등장하고, 그 상품들은 모두 MS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상품들이다. MS의 상품은 이런 상황에서도 사용되고, 저런 사람도 사용하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나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는 식이다. 이런 수사법은 물건의 쓰임새만을 줄줄이 나열하는, 예를 들어 ‘기침, 콧물, 가래, 코막힘, 몸살, 두통에는 OOO!!!’ 하는 식의 광고나, 성우들의 속사포 같은 멘트가 쏟아지는 케이블 방송의 요란한 광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학생들이 MS 광고에서 느꼈을 일반성은 사실 그렇게 ‘계산되고 선택된 일반성’인 셈이며, 그런 계산과 선택의 기준 혹은 대상은, 친구의 지적처럼, 광고의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상업활동을 주로 하는(business-centered) 사람들이다. (약간은 궤변이나 비아냥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MS의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Apple의 상품을 들고 있는 인물들은 한 명도 없다. 왜일까?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의 범주에 끼일 수 없어서? 아니면 그들은 potential하지 않아서? 설마..)


그에 반해 Apple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주변에는 컴퓨터나 그와 관련된 상품이 전혀 없다. 스크립트 중에서도 Apple의 상품을 지칭하는 단어는 ‘도구tool’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유일하다. 그마저도 스크립트에서만 찾을 수 있지 영상물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에서도 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과학자, 정치가, 대중운동가, 성악가, 운동선수, 대중가수, 영화감독, 미술가, 건축가, 발명가, 코메디언 등 주로 문화와 예술분야에서 창조적인 업적을 남겼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업(business)이 아니라 ‘인류(human race)’를 위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광고가 겨냥하는 대상 역시 Apple의 것이 더욱 광범위하다고,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디 사업을 하는 사람들만이겠는가? 과학자도, 정치가도, 예술가나 스포츠맨도 컴퓨터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MS 광고가 그랬던 것처럼 Apple의 광고 역시 계산과 선택을 했다. 다만 그 대상을 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장차 상업활동을 할 사람들이 아닌, "세상을 다르게 보는, 그래서 규칙이나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당장은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그래서 결국 세상을 바꿔왔던" 사람들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만든 물건이라면, 기꺼이 소비해 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내가 Apple 컴퓨터를 쓰는지도.)


어떤 사람들을 더 ‘일반적’이라고 보는지는 개인적인 가치 문제와도 크게 상관된다고 본다. 친구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물론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일반적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 판단은 그들이 그만큼 상업적인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그런 환경 속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업과 경제분야는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고 각각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는 있지만, 문화나 예술의 영역은 그만큼 다채롭게 상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문화나 예술의 세부 영역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산업이나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구분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를 잠재적인 사업가, 혹은 최소한 상업적 활동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사람으로 간주하는 학생들이 더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이라고 그리 큰 차이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업적인 범주 안에서밖에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이는 참으로 쓸쓸한 현실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나는 Apple의 광고에 더 매력을 느낀다. 나래이션의 내용도 그렇거니와 광고가 구사하는 수사법 역시 매력적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가치 판단에서도 Apple 광고의 대상이 훨씬 일반적이고 포괄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분야가 넓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Apple 광고의 수사법은 전달하려는 의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MS 광고의 경우-은 정보의 차원에서는 풍부하다 하겠지만, 오히려 그 구체성 때문에 그 너머를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배경 속 인물들-Apple 광고의 경우-과 그들의 다소 모호한 이미지는 그들이 지닌 사연과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Apple 광고의 인물들이 배경보다는 얼굴이나 상반신에만 집중하는 시점(bust shot)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런 모호함과 더불어 인물에 대한 집중력을 강화시킨다.) 다시 말해 Apple 광고의 모호함과 추상성은 정보의 면에서는 빈약하지만 그로 인해 수용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많은 정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점이 내가 Apple 광고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건조하고 직설적인 대화의 피곤함에 비해 어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너무도 즐겁다. 누구의 뒷담화를 나누건, 삶이니 종교니 자못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건, 혹은 단순한 농담을 주고받을 때라도 그들과의 대화는 시원스러운 해방감과 뭔지 모를 충만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대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한 여운이 남는다. 나의 경우 엄마를 비롯해서 형이나 동생과 나누는 대화가 특히 그렇다. 오랫만에 엄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새벽이 깊도록 서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형이나 동생과 길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그래서 무척 아쉽지만- 비록 짧은 대화일지라도 해방감과 충만감은 빵빵하다. 물론 가족이 갖는 기본적인 정서적, 정황적 공감대가 전제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즐거움을 가능케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다름아닌 ‘수사적 표현’은 아닐까 싶다.


남들이 들으면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시로 소설의 한 대목이 끌려나오거나 나무나 깃발, 등산, 악인 등 대화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소재들이 호출되고, 오래된 경구나 어느 시인의 노래 구절이 불쑥불쑥 등장하니 말이다. 무관해 보이지만 모두 서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나 내용을 위해 동원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뜬금없이 끌려나오는 소재나 표현들은 껄끄럽지 않게 대화에 녹아들어간다. 대화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 가끔은 그렇게 동원된 수사적 표현 자체에 너무 깊이 빠져 길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궤도를 벗어나는 것조차도 재미있을 때가 있다. 동원된 수사법과 그 소재들이 대화의 일차적인 주제를 넘어 다른 소재나 주제, 혹은 새로운 느낌과 감각들을 촉발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넘나들기’는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고,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대화 중에 길을 잃는 것이 즐거울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요컨대,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수사법은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고, 대화 이후에도 여운을 남겨 다시금 사고와 표현의 폭을 확장시켜 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그런 대화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이며 에두르지도 않고 요지만을 이야기한 뒤, 대화는 끝난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삭막하다. 풍성함도 충만함도 없고 여운은 더더욱 없다. 정보전달의 일방적 필요성만 앞서고 전달할 정보만 빽빽할 뿐, 받아들일 상대를 위한 일말의 배려나 수용의 여지, 그리고 감성과 상상력이 들어설 곳이 없다. 하지만, 일찍이 보들레르가 말했듯, 상상력은 모든 능력의 여왕이라 했느니.
by 허용 | 2009/02/13 10:45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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