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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전시 소개부터. 지난 4일에 개관하여 내년 1월 18일까지 계속된다. 10시부터 5시까지. 평일은 12시반과 3시반, 그리고 주말과 휴일에도 전시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전시장을 찾으신 분들은 반드시 안내설명을 요청하시길. 설사 그닥 재미가 없더라도 설명 없이 보는 것과 설명을 듣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 평일 12시반에 진행되는 전시설명(도슨트docent)은 항상 허용 연구원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하시길. 혹 이글을 보고 평일에 박물관을 찾으신 분들 중 허용 연구원의 안내설명이 듣고 싶으신 분들은 꼭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문의하시라. 안내데스크에서 ‘저~ 허용 연구원의 안내설명 들으러 왔습니다. 여기에서 전화하라고 했는데요.’하시면 냉큼 내려갈테니.. 미리 전화를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요. 02-3290-1517(고대박물관 유물정리실). 아무튼, 이번 전시의 소재는 다름아닌 “칼(刀劍)” 처음 준비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소재는 정해져 있었다. 박물관이 새로운 건물로 이전할 때부터 칼을 소재로 한 전시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졌단다. 고대박물관의 도검 컬렉션은 국내외에서도 인정받을만큼 뛰어나다고 한다. 국내 전시는 물론이고 해외 도검 전시에서도 빠지지 않고 출품 의뢰를 받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질 좋은 칼이 소장되어 있다.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칼들이 워낙 희귀한 사정도 있지만 도검 관련 박물관이 아닌 대학박물관의 컬렉션으로서는 아주 드문 경우다. 하지만, 수장고에서 처음 칼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날카롭다, 섬찟하다, 무섭다, 위험해 보인다.. 따위였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는 이 칼들 중에는 실제로 누군가를 베고 찔렀던, 진짜 흉기로 사용되었던 녀석들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또 그런 칼들을 전시해 놓으면 수컷임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마초들은 꽤나 좋아하겠구나, 휘둘러 보고 싶어 안달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자~ 그런 칼을 전시해야 했다. 오래되고 소중한 유물임에는 틀림없지만 ‘흉’한 물건이기도 한 칼을, 폭력과 남성성을 혐오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칼을 전시해야 한다. 일단 스스로부터 칼은 흉물이라는 선입관을 깨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살피고 넓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 개최된 관련 전시 사례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선사시대의 돌칼부터 조선시대의 도검까지를 폭넓게 다룬 전시도 있었고, 그야말로 무기로서의 칼에 집중한 전시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런 전시들은 모두 칼의 ‘물질성’에만 집중한 전시라고 생각되었다. 다시 말해 칼을 고고유물, 전통공예품, 중세무기 등 오래된 ‘물건’으로만 다뤘다는 거다. 그래서 전시의 구성도 물건의 외형이나 구조가 연대기적으로 어떻게 변하였는지, 혹은 외형이나 용도에 따라 물건들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시장에 남는 것은 건조하고 차가운, 근데 왠지 중요해 보이기는 한 오래된 물건들 뿐이다. 그리고 연대기적 구성의 전시에서는 현재의 분석적 시각만이 두드러지며, 유형별 전시에서는 박물적 취향을 넘어서는 무엇을 전달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런 시각과 취향은 유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로이다. 하지만, 사실 그런 형식의 전시는... 재미가 없다. 깊이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가능한 넓게 읽으면서 나는 조선시대의 칼에 대한 여러 가지 면모에 대해 알아갔다. 이미 국립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 육군박물관 등에서 대규모 전시를 연 적이 있어서 국내 도검 유물의 전체적인 현황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군사학이나 무기 관련 분야에서 조선시대의 칼을 다루는 몇 가지 중요한 쟁점과 이슈들도 파악할 수 있었다. 전시 유물의 범위는 조선시대의 도검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공동개최하는 경인미술관 소장품들을 통해 전시의 규모는 상당한 수준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유물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였다. 확보된 규모를 통해 다양하게 보여주자는 것이 첫번째 의도였고, 날카롭고 차가운 칼-흉기-무기의 이미지가 너무 부각되어서도 안된다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기관 차원의 의도, 학예실 차원의 의도에 더해 나는 내가 지닌 전시관(觀)을 담고 싶었다. 그건 예전에도 언급했던 당대적(當代的) 시각으로 바라보기, 물건이 사용되었던 구체적인 맥락을 보여주기, 유물에 이야기를 담기 등.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그때 그 칼을 썼던 그 사람들을 내세워 칼을 보여주자는 것. 날카롭고 차가운 칼-물건만을 내세워서는 그것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다. 그리고 모름지기 물건이란 그것이 사용되었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 상황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없다면 그 물건을 사용했던 일정한 유형의 사람들-계층이나 집단 따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맥락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칼에 대해 공부하면서 얻게 된 것인데, 조선시대에 칼은 병사들의 주무기가 아니었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조선시대의 전쟁에서 주무기로 사용된 것은 활과 화살. 심지어 무과(武科) 시험에 검술 과목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화포나 조총 등 열병기(熱兵器)의 등장으로 칼이 실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졌다. 대신 칼은 사람의 몸과 가장 가까운 호신구(護身具)로서 병사들뿐만 아니라 왕에서부터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소지하고 사용하였던 말그대로 생활의 도구였다. 그리하여 이번 전시 구성은 그렇게 칼을 사용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제왕, 무사, 선비, 여인, 신(神)이라는 다섯 인물(군)로 나누고, 그들이 사용했거나 그들을 위해 사용되었던 칼을 각각 ‘제왕의 칼’ ‘무사의 칼’ ‘선비의 칼’ ‘여인의 칼’ ‘신들의 칼’로 구분하여 배치하였다. 이런 기획의도에 맞춰 전시 공간도 각각의 인물군을 대변하는 공간, 이를테면 궁궐의 어좌, 임진란 당시의 전쟁터, 선비의 사랑방, 여인의 안방, 그리고 종교의례가 열리는 공간 등을 재현하...려고 했지만, 그런 무모한 기획은 대학박물관의 예산 규모에 맞춰 가볍게 무시되었다. 그걸 대신해 공간이나 상황을 담은 회화 등의 보조유물로 대신하기로 했다. 회화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회화 유물의 대여에 특히 신나했지만 역시나 소장기관들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대여신청을 한 5점의 유물 중에서 단 한 점(이인상의 <검선도>)만, 그것도 6주라는 제한된 기간동안 대여해 주었다. 이래저래 애초의 이상적인 기획과는 많이 멀어지게 되었지만, 사람을 기준으로 물건을 보자는 나의 의도와 기획안에 따라 전시가 구성된 점은 참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기획’이라는 일은 그렇게 자신의 의도나 철학을 내세운다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건 기획을 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덕목, 혹은 자질이 아닐까 싶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런 의도와 구상을, 함께 작업하는 여러 사람들의 그것과 조율하여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며, 그런 다음, 합의된 구상을 실행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변수와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훌륭한 기획자'의 역량이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그 과정이라 생각된다. 그런 과정까지를 모두 통들어 나는 ‘기획’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번 전시를 그렇게 '기획'하면서 나는 예전 박물관이나 직장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지금껏 참여한 전시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컸었고, 그래서 다루는 유물과 협조기관도 많았다. 공동전시로 진행된 점이나 전혀 문외한인 소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배웠으며, 나에게 부족한 능력과 덕성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비정규직 연구원의 한계에 순응하는 법도 (다소 거칠게) 익혔으며, 무엇보다 ‘전시기획’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좀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밤을 새며 준비해도 막상 개관을 한 뒤에 밀려드는 허탈함과 약간의 쓸쓸함은 어쩔 수 없었으니, 그를 달래려고 서점을 찾았었다. 그때 산 책,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는 전시기획에 대한 생각과 이번 전시의 교훈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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