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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이곳은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한 의미가 없는 도시였다. 선배들을 따라 나선 종로와 명동도 첨단의 유행이 뜨고 지는 곳이 아니라 점거할 도로와 도망갈 골목만이 얽혀 있는 곳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도 학교와 형의 하숙방, 학교와 서울역, 학교와 고속버스터미널을 오가는 길 말고는 아는 길이 없었다. 게다가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애용했던 탓에 서울은 나의 생활과 필요를 기준으로 존재하는 몇 개의 점들이 모여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서울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서울의 한복판에 있었던 국립중앙박물관때문이었다. 박물관 안의 유물을 보며, 박물관을 나와 경복궁을 어슬렁거리며 나는 삭막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세월의 흔적을, 역사의 자취를 보았다. 아니, 역사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오래된 것들'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서울에도 그런 오래된 것들이 있음을 알게되면서 나는 서울에 조금씩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것/곳으로 인해 서울은 부정해야할 현재의 모순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이 아니라,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재발견된 셈이다. 그 이후로 난 서울살이가 팍팍할 때마다 오래된 곳들을 찾아다녔다. 고궁과 박물관과 오래된 동네, 오래되어 촌스러운 물건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높은 월세를 무릅쓰고 효자동에 한동안 머물렀던 건 오래된 한옥과 몇백년의 세월을 견뎌낸 나무와 산이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집 근처 사직공원에 서 있던 키 큰 플라타너스들은 콘크리트 건물보다 높게 솟아 있었고, 도시의 무례함을 꾸짖는 듯한 그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에게서 어떤 사연을 읽고 싶었고 나 역시 서울과 그런 사연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반면에 지금 사는 동네가 점점 싫어지는 건 사람과 나무가 기생하듯 담기는 예의없는 건물들이 자꾸만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건물들의 주변으로는 머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차도 사람도 모두 흘러간다. 머물러 남기는 건 쓰레기들 뿐. 이제 서울 생활도 15년이 다되어 간다. 어떤 사연이 쌓였던가? 아직까지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뛰어들지 않고 곁에서 바라볼 때만 느리고 편할 뿐이다. 뛰어든 생활 속의 서울은 여전히 전쟁터이다. 그게 한계다. 서울의 한계, 상품과 이윤관계만을 매개로 형성되는 관계가 지배하는 공간의 한계. 그리고 그런 관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나의 한계... 오래된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 낙산에서 바라본 서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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