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 -『論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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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 | 2009/06/25 00:34 | 트랙백 | 덧글(0)
절망과 저주, 그리고 기도

누가 교황청에 탄원서라도 보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사제들이 이렇게 폭행 당하고 있다고..


이제는 분노하고 욕하는 것마저 지친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지난 주에는 MB니 시국이니 아예 서로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런 말들과 함께 끓어 오르는 분노와 답답함이 고통스러워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거다. 언젠가 명동성당에 도착한 오체투지순례단을 맞이하며, 한 신부님께서 '정직한 절망'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엄마도 나도 이제는 분노를 너머 절망하고 있다. 그나마 어쩌다 화제에 오르면 욕도 아닌 그저 '천벌'을 받을거라는 저주만이 흘러나올 뿐이다. 절망과 저주... 그것말고는 그들에게 내보일 적절한 반응이 없어 보인다. 다만, 유가족과 대책위에서 일하는 사람들(동생을 포함해서), 그리고 매일 미사를 드리고 단식을 하시는 신부님들, 무엇보다 고통받는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나와 엄마를 포함해서)이 제발 무사히 이 야만의 시간을 견뎌내 주길 바랄 뿐이다.

by 허용 | 2009/06/22 22:21 | 트랙백 | 덧글(1)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차이
예전에 잠깐 언급한 책-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에는 '단순성, 복잡성, 학습된 단순성'이라는 앎의 세 가지 단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요근래 전시를 준비하면서 포스터나 전시패널 등 디자인이 중요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소위 '학습된 단순성'과 '일차원적인 단순성'을 착각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어린 아이의 사고는 단순하다. 성인(聖人)의 사고 역시 단순하다. 하지만 둘의 단순함은 다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예컨대 후자의 단순함이 학습된 단순성이라 할 수 있다. 둘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뭐가 없는 것과 많은 요소가 정제되어 뭐가 없어 보이는 것은,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그저 외형적인 유사함만으로 둘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정제의 노력이나 과정 없이, 뭣도 없는 것으로 손쉽게 학습된 단순성을 흉내내려는 태도는, 사실 '꼬라지'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촌스럽다'.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차이는 그런 정제의 노력과 과정에 있지, 화려한 장식이나 눈에 띄는 색깔 따위에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단순함은 디테일(세부적인 요소)에서 비롯된다. 단순하니까 세부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세부적인 것들의 완성도가 세렴됨을 결정짓는다. 수많은 세부적인 것들이 정제된 상태가 진짜 단순함인 것이다. 그래서 세련된 것들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정제된 단순함 안에 수많은 세부적인 것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단순함이나 세련미를 추구하는 것이 탐미적인 취향에 불과하다거나, 배부른 짓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세련의 과정을 즐기고 결과적인 차이를 감수(感受)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가깝게는 요즘 '붓 돌리는 재미'에 흠뻑 빠져 계시는 엄마가 그렇다)  또 그렇게 단순미를 추구하고 감수하는 것이 쉬운 줄 알지만, 혹은 쉬운 듯 보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by 허용 | 2009/05/11 00:41 | 트랙백 | 덧글(4)
수준 차이
인간으로서 지니는 기본적인 존엄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교양과 지식에는 엄연한 수준 차이가 존재한다. 그걸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지만, 그 차이를 감안하지 않는 것도 우둔한 짓이다. 부처는 속세의 중생을 9가지 품品으로 나눴고 각각에 걸맞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였다. 마찬가지다. 사람을 대할 때나 문제를 해결할 때도 그 사람과 상황의 수준에 맞는 통로를 찾아야 한다.  다만 무량無量하신 부처님은 어떤 품의 중생을 맞더라도 흔들리거나 노여워하지 않으셨지만, 미혹한 이 중생은 그 수준의 차이를 마냥 견디기가 힘들다. 행여 내가 그들의 수준, 혹은 그만한 환경의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고..  요즘 더 세련된 것, 더 깊은 것, 더 정확한 것, 더 옳은 것,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구가 깊어지는 것도 모두 그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허허.. 이거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되어야 하나..
by 허용 | 2009/04/21 19:56 | 트랙백 | 덧글(4)
간여 vs 관여
간여(干與) - 관계하여 참견함.  
관여(關與) -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함.

함께 일을 하는 사람도, 일을 지시하는 사람도 둘의 차이를 명확히 한 채로 관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일의 진행에 있어 사실 어렵고 중요한 것은 그런 관계의 수위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해 내는 일이다. 무작정 관계만 하려고 하는 것, 다시 말해 말만으로 참견하거나 참여하는 건 입만 붙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by 허용 | 2009/04/20 18:3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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