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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공항이라는 시공간을 가장 낭만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Love Actually]가 아닐까 싶다. 떠남의 아쉬움과 재회의 반가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레임과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은 공항에서 젖어들 수 있는 감정들이 분명 일상의 밋밋한 감정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이 말해준다.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을 보고 난 뒤의 여운 역시, 그가 줄기차게 탐구하는 사랑과 관계의 미묘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보초당의 푸른 대나무와 화면을 넘어 느껴지는 중국 음식의 강한 향신료 냄새, 그리고 공항과 1인실 호텔방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레임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그런 아련한 느낌이 더욱 강했다. 영화를 본지 꽤 되었는데도 여전히 불쑥불쑥 그 느낌이 상기되어 난처할 때가 있다.. "공항에 가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은 건가?' 생각도 해보았는데, 아니었다. 어디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떠나기 직전과 직후, 공항이라는 널찍한 공간과 그곳에서 보내는 한가한 시간이 그리운 거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저 지나칠 뿐인 까페에 앉아 '이코노믹'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일, 바쁜 일상에 밀려 집지 못했던 책을 읽는다거나,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 큰 몸집을 움직이는 비행기 구경하기.. 거기에 맥주 한 잔이라도 홀짝인다면 더욱 좋다.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갖을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보낼 공간 역시 둘러보면 도처에 있다. 하지만 공항은 곧 그곳을 떠나다는 일종의 전제가 그 시공간에 대한 감정을 더 '가볍게' 만든다.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들이지만 그것이 일상을 벗어난 공간, 공항이라는 낯선 곳에서 이루어질 때는 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컨대 모두가 익숙한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면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지만, 개별적으로 모두가 낯선 공간에서의 낯선 행동은 심지어 그만의 '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커피 마시기, 책 읽기, 사람 구경하기는 공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전혀 다른 행위가 되는 것이다. 공항은 그렇게 모두에게 낯설고 가벼운 공간이기에 일상적인 행동도 비일상적인 행동도 전혀 새롭고 부담없는 일이 된다. 대학원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너도 그렇냐'며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주변에 공항의 그런 느낌을 즐기려 비행기를 타지 않는데도 일부러 공항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구나 싶어 재밌기도 하고, 나도 그 방법을 써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김포공항 청사에 큰 마트가 있는데 그곳을 가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단다.) 하지만, 아니지 싶다. 기왕이면 진짜로 공항엘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전시가 끝나면 여유자금을 모아 두보초당엘 가리라. 그리고 그때는 아주 일찍 공항엘 나가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래는 그런 공항의 낭만과 고독을 상기시켜 주는 영화 예고편. 얼마전에 쓴 '낭인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는 영상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세시풍속'을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개관이 얼마 남지 않아 바쁘기가 그지없다. 전시에 쓰일 조선시대의 세시기(歲時記)들을 찾아 읽고 있는데, 와중에 이덕무의 '세시잡영'이라는 시를 접했다. 늦은 밤 사무실에서 그의 시를 읽다가, '역시, 이덕무야!' 했다. 다른 세시기들은 기록적인 성격이나 목적이 강해서 일년의 세시풍속을 상세하게 풀어 적거나, 시로 읊어도 각 편마다 제목을 붙여 정리하는 식이다. 전시에 필요한 정보나 글을 얻기에는 그런 류의 글들이 유용하지만, 뭐랄까 여운이나 느낌은 없다. 반면에 이덕무의 시는 그저 여항의 풍속을 기록하지만 않고 거기에 자신의 심회를 슬슬 녹여내고 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런 풍속과는 무관하다는 듯 한발짝 비껴선 가짜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다. 시의 첫 두수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시는 모두 22수의 5언 절구로 이루어져 있고, 아래 번역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펴낸 [조선대세시기] 2권을 따랐다. 원문은 생략한다. 그럴 여유까지는 사실, 없다.)
가친의 편지가 남쪽에서 이르러 / 새해를 상서롭게 맞으라 하시네
친정에 가 있는 병약한 아내는 / 새해 맞아 남몰래 눈물 흘리리
삿갓 꺼내 수북히 쌓인 먼지 떨고는 / 푸른 도포 차려 입고 세배하러 나가네
두 딸은 마치 오리처럼 가볍게 / 널 끝에서 오르락 내리락
관가에서 내린 금주령이 두려워 / 도소주조차 담그지 못하네
한평생 마음이 거칠고 게을러 / 섣달그믐만 되면 늘 슬퍼지네
사람들은 나이가 쉰 살이 되면 / 말끝마다 반백이라고 탄식하네
언젠가 이곳 포천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문득 내 처지가 ‘낭인’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몇년 사이 정처없이, 달랑 학위와 경력만 들고 이곳 저곳을 떠돌며 밥을 벌어 먹고 있는 처지가 스스로 처량하게 느껴졌던 거다. 엄마는 이런 내 뉘앙스를 금세 간파하시고 적잖이 맘 아파하셨지만 요즘 그 낭인의 처지에 뭐랄까, 일말의 낭만이나 희망조차 없는 건 어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이 시대의 노동자들, 특히 지식노동자들은 봉건시대의 낭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처지라는 생각도 든다. 계급적인 위치나 실질적으로 하는 일 모든 면에서 말이다. . . . 쇼군(主君)을 잃은 사무라이, 낭인(浪人, Ronin).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칠 대상이 없어져 버린 그들에게 살아있는 삶은 별 의미가 없다. 사무라이라는 자기 존재의 기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직 원수에 대한 복수만이 남은 생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 47명의 사무라이가 와신상담 끝에 쇼군의 복수를 이뤄낸 뒤 모두 함께 할복으로 삶을 마감한 [주신구라忠臣藏]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47명 낭인들의 비장미와 마고토의 정신은 일본적인 윤리의식과 감수성을 잘 담고 있어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도 빈번하게 인용된다. 대중적인 인기로 보자면 중국의 ‘적벽가’ 정도에 해당하겠는데,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 등으로 자주 각색되기도 했다. 로버트 드 니로와 장 르노가 주연한 [로닌]이라는 다국적 영화도 그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쇼군을 읾음으로써 그들은 자기 정체성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기반까지 상실하게 된다. 칼솜씨 말고는 달리 부릴 재주가 없었으니 생계를 보장해 주던 쇼군과 안전한 생활 공간이이었던 성(城)을 잃은 그들은, 이를테면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의 ‘실업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사실 봉건시대의 ‘실업무사’는 칼 한자루에 의지해 이곳저곳을 떠돌며 밥을 빌어먹어야 하는 부랑자 혹은 거지에 다름아니었다. 영화 [자토이치]에서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한 맹인 검객이나 그와 대결을 벌이는 무사 핫토리 역시 그런 실업무사이다. 특히 병든 여인을 위해 청부살인을 하는 핫토리는 낭인 이야기의 조금은 낭만화된 버전이 아닐까도 싶다. 하지만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비난과 원망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쇼군과 함께 죽지 못한 사무라이는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도 취약한 계급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그런 경제적, 윤리적 난관을 감내하며 사무라이로서의 의무를 다했을 때 그들은, 주신구라에 등장하는 47인의 사무라이처럼 일거에 윤리적으로 복권된다. 아니, 윤리적인 모범이자 영웅으로 상승한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극적인 부활은 봉건시대에나 가능한 이야기일 뿐, 이 시대의 실업자들에게 그런 기회는 없어 보인다. 소위 '먹고사니즘'이라는 괴물이 윤리 따위 먹어치운지 오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사회가 움직이던 시대에 언제 칼을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육체적 공포는, 이중적 자유를 부여받은 시대에 이르러 잠재적인 실업의 공포로 바뀌었다. 겪어본 사람은, 혹은 겪고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실업의 공포가 얼마나 육체적이고 물리적인지를. 그런 공포를 피하기 위해, 낭인이 되지 않기 위해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쇼군을 지켰고, 이 시대의 노동자들은 직장을 지킨다. 영지를 지배하는 쇼군이 여럿이듯이 다양한 직장에서 일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도 다양하다. 그것은 어떤 사상이나 이념일 수도 있고, 그저 돈이라는 물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루카치의 표현대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우리들, 낭인은 윤리적 자의식마저 잃어버리고 목전의 돈과 당장의 생계만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난만, 혹은 자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도 캄캄한 시대다. 일단은 길을 걸어야 한다.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길은, 결국 우리들을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낭인 같은 생활의 낭만이나 희망은 바로 그 ‘길 떠남’에 있다.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 論語 里仁
아까 오전에 포스트를 올릴 때 음악을 올리고 싶었는데, 이글루스에서 얼마전부터 음원 필터링으로 저작권 보호가 설정된 음원은 알아서(!) 차단을 하고 있었단다. 내가 올린 음악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업적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사실, 누가 이런 외진 블로그에서 음악 소스를 찾아 다운로드해서 혹은 녹음해서, 돈을 벌겠다고 팔아 먹겠는가?!! 그렇게 해서 얼마나 돈이 벌릴지도 의문이고, 누가 그런 음원을 돈 주고 살지도 의문이다. 돈버는 궁리에는 도무지 젬병인 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먹기는 힘들 것 같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내 생각엔 오히려 그런 식으로 접한 음악이 맘에 든다면 매번 음악을 듣기 위해 그 블로그를 방문하기보다는 음반을 산다거나 온라인으로 구매를 해서 플레이어에 담고 다니며 들을 공산이 더 크다. 나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블로그를 하며 많은 새로운 음악을 접했고 요 몇 년동안 산 음반들은 다 그렇게 접한 음악들이다. 물론 음악으로 돈'만'을 벌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겠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사실 기업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고 보는데-블로그는 훌륭한 홍보수단이 된다. 다운로드나 소스 추출이 불가능한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것도 충분히 개발 가능할텐데, 그 뛰어난 IT 기술은 두었다 뭐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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