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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오전에 포스트를 올릴 때 음악을 올리고 싶었는데, 이글루스에서 얼마전부터 음원 필터링으로 저작권 보호가 설정된 음원은 알아서(!) 차단을 하고 있었단다. 내가 올린 음악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업적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사실, 누가 이런 외진 블로그에서 음악 소스를 찾아 다운로드해서 혹은 녹음해서, 돈을 벌겠다고 팔아 먹겠는가?!! 그렇게 해서 얼마나 돈이 벌릴지도 의문이고, 누가 그런 음원을 돈 주고 살지도 의문이다. 돈버는 궁리에는 도무지 젬병인 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먹기는 힘들 것 같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내 생각엔 오히려 그런 식으로 접한 음악이 맘에 든다면 매번 음악을 듣기 위해 그 블로그를 방문하기보다는 음반을 산다거나 온라인으로 구매를 해서 플레이어에 담고 다니며 들을 공산이 더 크다. 나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블로그를 하며 많은 새로운 음악을 접했고 요 몇 년동안 산 음반들은 다 그렇게 접한 음악들이다. 물론 음악으로 돈'만'을 벌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겠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사실 기업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고 보는데-블로그는 훌륭한 홍보수단이 된다. 다운로드나 소스 추출이 불가능한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것도 충분히 개발 가능할텐데, 그 뛰어난 IT 기술은 두었다 뭐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이 아닌 관점에 있다. 진짜 문제는 블로그를 통제불가능한, 그래서 불법적인 판매창구로만 인식하는 '업자들'의 관점이다. 모름지기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명분상으로라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사고할 테고, 그렇다면 사용자의 다양한 층위와 유형을 고려하는 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마케팅'의 기본이겠다. 음악을 올리기 위해 한참을 삽질하면서 나는 내가 마치 '불법음원판매자'로 취급받는 듯한 느낌에 몹시 씁쓸했다. 그러니까 나처럼 마이너(?)한 음악을 즐기고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돈벌이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이윤창출에 유효한 변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서비스의 대상에도 포섭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나 영상을 통해 다양한 감성과 문화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식으로 최소한의 자기 표현마저 불가능한 매체는 하등의 쓸모가 없다. 다만 명목상의 '무료'서비스라는 점만이 유효할 뿐이다.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서비스형 블로그의 이용은 절대 무료가 아니다. 내가 제공한 개인정보는 물론이거니와, 보기 싫은 광고와 관심도 없는 이야기들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설계된 메뉴나 프로그램들을 통해 나는 충분히 무료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 세상에 진짜 무료인 서비스는 없는 법이다. 내가 올리려 한 음악이 저작권 보호를 이유로 공유될 수 없었다는 점도 실망스럽다. 도나웨일의 음악이 더이상(?) 마이너하지 않다는 소리인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 아니 정확히는 음원판매업자들은 그렇게 보호를 명목으로 무조건 막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창작물을 알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블로그를 70~80년대의 불법음반노점상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소리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라지만 숨 쉴 틈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더구나 문화에서 돈은 필요조건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 절대적인 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 문화가 이윤의 관점에서만 생산되고 소비될 때 그 문화는 시들기 시작한다.) 이글루스가 대기업으로 넘어간 덕분인가? 상업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의 서비스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경품 내걸고 상품 홍보해 주는 메뉴는 성업중이고... 이참에 나도 음반 홍보 한 번 하자. 며칠 전 두번 째 앨범을 낸 도나웨일의 음악이다. 아, 경품은 물론이고 상업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
새벽부터 비가 오더니 아침까지 그치지 않고 가만가만 내린다. 도나웨일(Donawhale)의 [비오는 밤]을 틀어놓고 창밖으로 비를 내다보다가, 문득! 재미난 생각이 들어 친구와 후배들에게 똑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반응들이.. 제각각이다.
나 : 비 온다... 이 비가 그치면 이제 완연한 가을이겠다. 자전거를 타기에도, 사람을 만나기에도, 만나서 지나가는 시간들을 이야기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언젠가 신문 서평란에서 '잘 꾸며진 박물관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이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그 표현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박물관의 전시는 정말 책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리고 나는 좋은 전시를 하고 싶은 욕심 만큼이나 좋은 책을 한 권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많다. 쓰는 것 말고 만드는 것 말이다.
둘-전시와 책-은 모두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이 조화를 이룰 때라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아니, 둘을 쉽게 구별할 수는 없으니 (혹은 애초에 둘은 하나였으니) 사고력과 기술력의 조화가 필수적이라고 해야겠다. 학예사건 편집자건 '머리' 뿐만 아니라 '손'의 능력이 무척 중요하다. 전시디자인에 대한 감이 없는 학예사는 그저 유물들을 나열해 놓을 뿐이고, 시각디자인에 대한 감이 없는 편집자는 문장들을 늘여놓기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물은 그저 오래된 물건에 불과하고, 문장은 '까만 것은 글자요 하얀 것은 종이요'가 되어 버린다. 때문에, 유물이나 문장에 담긴 정보-지식-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기 좋은 전시, 읽기 편한 책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감각'과 '손기술'이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학예사와 편집자라는 직업은 참으로 어렵고도 재미있는 직업이다. 아울러 가장 제대로 평가받지도,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는 직업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몰이해와 푸대접 속에서도 여전히 좋은 전시와 좋은 책들이 나오고 있고, 그것을 알아보는 혜안들도 있다. 다만 조용히 이어질 뿐이다. 그러니.. 힘들 내시라. 읽고 있는 책 [윌리엄 모리스 평전] 중에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어 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이라는 책에 실린 글이란다. 다소 가혹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나는 이 인용문의 옆 여백에 ‘통쾌!’라고 적었다. 왜 통쾌하다고 느꼈을까..?
지난(!) 여름 박물관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이 지역의 문화재들을 공부하고 직접 답사한 뒤에 어린이들 스스로 ‘문화재 카드’를 만들어 보는 내용이었다. 떠들썩하게 홍보하지 않아서 신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참가자가 다 차지 않을 것 같아 시청을 통해 인근 공부방을 섭외했고, 6명의 공부방 아이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모두 3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 동안 그 공부방 아이들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 아이들은 우선 주의력이나 집중력부터가 떨어진다. 선생님들의 말도 잘 듣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혼자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으면 아예 말수 없이 어떤 것에도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주위가 산만한 아이들이 조금 있구나 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런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모두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들 덕에 모둠을 인솔하는 선생님들 속이 많이 탔다. 나중에 프로그램을 끝내고 뒷풀이 하는 자리에서 한 남자 선생님은 무심결에 주먹이 올라갈 정도였다고 했다. 답사를 다니는 동안 그 아이들과 더 가까이 부대끼며 유심히 하는 행동들을 살펴보니.. 아이들은 굶주려 있었다. 교내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 아이들의 먹성은 대단했다. 보통 어른들이 먹는 양과 버금가는 음식을 먹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랬는데, 그 아이들은 그렇게 배만 고픈 게 아니라 따뜻한 정에도 굶주려 있었다.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어쩌면 그런 굶주림에서 오는 건 아닐까도 싶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거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도, 말 없이 구석에 박혀 있는 것도 모두 선생님들이나 주위 친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내 말없던 한 아이가 조용히 내 곁엘 오더니 손톱을 세워 내 팔뚝을 주욱 긁고 가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했고 그 관계에서 오는 따뜻한 충만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난히 선생님 곁에 찰싹 붙어서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쓰지 못하도록 하는 모습도 자신에게 부여된 관심이나 애정이 빼앗기는 걸 두려워 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공부방 아이들은 그렇게 사람의 정에 굶주려 있었던 거다. 3일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다른 아이들은 웃으며 인사하고 또 보자고, 언제 또 어린이 교실 하느냐고 묻는데, 그 아이들은 공부방 차가 오자 선생님과 새로 사귄 친구들을 버리듯이 뒤로 하곤 저희들끼리 티격대며 차에 올라탔다. 서운함보다는 너무 쉽게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는 모습에 또 어딜 가서 허겁지겁 거칠게 그 굶주림을 채우려나.. 안타까웠다. 내년에는 공부방 아이들만 데리고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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